온열질환 해열제, 왜 먹으면 안 될까요? (15년차 약사가 설명합니다)

주의: 본 정보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참고용이며, 의사나 약사의 전문적인 진단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정확한 복용법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하십시오.
팔지 않는 약사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더위로 몸이 뜨거워진 것이라면,
해열제는 효과가 없습니다.

감기로 나는 열과 더위 먹은 열은 원인부터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온열질환 해열제 복용이 왜 소용없는지, 그리고 대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리했습니다.

그늘 휴식

요즘 같은 날씨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후끈 달아오르면, 습관처럼 해열제부터 찾게 되시죠. 하지만 온열질환 해열제 복용은 생각만큼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도 약사가 되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부끄럽지만 정말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위험할 수도 있고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자세히 해보려 합니다.

온열질환 해열제 복용이 효과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약사 안내 이미지
더위로 오른 열과 감기로 오른 열은 원인이 다릅니다. 온열질환 해열제가 듣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열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몸 안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싸울 때 나는 열. 우리가 흔히 아는 감기 열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 바깥이 너무 더워서 몸이 미처 식히지 못해 오르는 열. 흔히 더위 먹었다고 표현하는 그 상태입니다.

이 둘은 이름만 같은 ‘열’이지, 원인부터가 완전히 다릅니다.

온열질환 해열제가 듣지 않는 이유

감기로 열이 날 때는 뇌 안의 시상하부라는 곳에서 “체온을 올려라”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몸이 병원체와 싸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는 것이죠.

해열제는 바로 그 명령을 차단하는 약입니다.

그런데 더위로 오른 열은 뇌가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그저 바깥이 너무 뜨거워서 몸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차단할 명령 자체가 없으니, 해열제가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뇌가 시킨 열  →  해열제 효과 있음
환경이 만든 열  →  해열제 소용 없음

온열질환 해열제가 효과 없다는 것은 제 개인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MSD 매뉴얼에도 열사병 환자에게 감염성 발열 치료용 약물, 그러니까 아스피린이나 아세트아미노펜을 쓰는 것은 효과가 없으므로 삼가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일사병과 열사병, 무엇이 다른가

이름이 비슷해 헷갈리기 쉽지만, 이 둘은 심각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일사병

땀을 너무 많이 흘려 몸의 수분과 염분이 부족해진 상태입니다. 어지럽고 두통이 오고 구역질이 나지만, 의식은 멀쩡합니다. 서늘한 곳에서 쉬면서 이온음료를 마시면 대개 회복됩니다.

열사병

차원이 다릅니다. 뇌의 체온 조절 중추가 아예 기능을 멈춘 상태입니다.

체온이 40도를 훌쩍 넘어가는데, 더 무서운 것은 땀이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몸을 식혀야 하는데 식힐 수단을 잃어버린 것이죠.

여기에 의식까지 흐려집니다. 말이 어눌해지거나, 비틀거리거나, 심하면 경련이 오거나 의식을 잃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상황입니다.

열사병 초기증상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오르고, 땀이 멎고, 피부가 뜨겁고 건조해지며, 두통이나 어지럼과 함께 판단력이 떨어집니다. 이 중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지체하지 마시고 119에 연락하십시오.

구분법 — 딱 두 가지만 보십시오
01의식이 있는가, 없는가
02이 나는가, 나지 않는가
의식 멀쩡 + 땀 촉촉  →  일사병
의식 흐림 + 피부가 뜨겁고 건조  →  열사병, 즉시 119

더위 먹었을 때 대처법 —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다면

온열질환 응급처치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아래 세 가지를 차례대로 진행하십시오.

  1. 119를 먼저 부릅니다

    이때 해열제를 먹이려고 가방을 뒤지지 마십시오. 의식이 흐린 사람에게 약을 먹이려다 기도로 넘어가면 훨씬 위험해집니다.

  2. 시원한 곳으로 옮기고 옷을 느슨하게 풀어줍니다

    몸에서 열이 빠져나갈 통로를 최대한 열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3. 몸을 식힙니다

    피부에 물을 뿌리고 바람을 쐬어줍니다. 목 옆, 겨드랑이, 사타구니처럼 굵은 혈관이 지나는 곳에 차가운 것을 대주면 효과가 더 좋습니다.

더위 먹었을 때 얼음을 직접 대면 안 되나요

더 차갑게 하면 빨리 식을 것 같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얼음을 피부에 직접 오래 대면 혈관이 갑자기 수축해버리고, 그러면 몸속 열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실제로 MSD 매뉴얼은 몸에 물을 분무할 때 차가운 물보다 미지근한 물이 더 낫다고 안내합니다. 찬물을 뿌리면 몸이 떨리면서 오히려 열을 더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MSD 매뉴얼 일반인용, 열사병)

숫자로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자료를 보겠습니다.

4,460명
2025년 여름 온열질환자
2018년 이후 두 번째로 많은 수치
29명
같은 기간 사망자
62.1%
사망자 중 60세 이상 비율
29명 중 18명

올해도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8월 초 기준으로 이미 지난해 사망자 수의 7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아직 가장 더운 시기가 남아 있는데도 말입니다.

특히 조심하셔야 할 분들

어르신

나이가 들면 갈증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몸은 마르고 있는데 뇌는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죠.

그래서 목이 마르지 않아도 시간을 정해두고 규칙적으로 물을 드셔야 합니다. 질병관리청 역시 갈증을 느끼지 않아도 규칙적으로 물을 자주 마시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다만 신장질환처럼 수분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질환이 있으시다면, 반드시 담당 의사와 상의한 뒤 결정하셔야 합니다.

혈압약·이뇨제를 복용 중이신 분 — 여름 이뇨제 탈수 주의

이뇨제는 소변을 많이 나오게 하는 약입니다. 여기에 더위로 땀까지 흘리면 탈수가 훨씬 빠르게 진행됩니다.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통로가 두 개나 열려 있는 셈이니까요.

여름 이뇨제 탈수는 본인이 자각하기 어렵다는 점이 특히 까다롭습니다. 소변량이 평소보다 줄거나 색이 진해졌다면, 이미 수분이 부족하다는 신호로 보셔야 합니다.

이런 약을 드시는 분들은 여름철 관리 방법을 담당 선생님께 한 번 여쭤보시길 권합니다.

소염진통제를 장기 복용 중이신 분

관절통으로 소염진통제(NSAIDs)를 꾸준히 드시는 분들도 여름에는 조금 더 신경 쓰셔야 합니다.

이 계열의 약은 신장 혈류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여기에 탈수까지 겹치면 신장에 가해지는 부담이 커집니다. 특히 어르신은 평소보다 수분 섭취에 더 신경 쓰시는 것이 좋습니다.

관절통 약의 종류와 복용 시 주의점은 관절통 약, 어떤 걸 골라야 할까에서 더 자세히 정리해두었습니다.

그럼 온열질환 해열제는 절대 먹으면 안 되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상황을 나누어 봐야 합니다.

야외에 오래 있다가 열이 올랐는데, 서늘한 곳에 들어가 물을 마시니 금방 나아지는 느낌이라면 온열질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때는 해열제가 필요 없습니다.

반면 실내에 있었는데도 열이 나거나, 콧물과 기침이 함께 오거나, 오한이 든다면 감염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때는 해열제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더위 탓인지 감기 탓인지 구분이 어려우실 때는 가까운 약국이나 병원에 문의하시면 됩니다.

자주 받는 질문

Q 더위 먹었을 때 이온음료가 물보다 나은가요?

땀을 많이 흘린 상태라면 수분뿐 아니라 염분도 함께 빠져나간 상태이므로, 전해질이 포함된 음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당뇨나 신장질환이 있으시다면 성분을 확인하고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Q 온열질환 응급처치 중에 물을 먹여도 되나요?

의식이 흐린 상태라면 먹이지 마십시오. 기도로 넘어가면 질식 위험이 있습니다. 의식이 또렷한 경우에만 조금씩 마시게 하시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119 대원의 안내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Q 실내에 있으면 열사병은 안 걸리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에어컨 없는 밀폐된 실내가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름철 차 안은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므로, 아이나 반려동물을 잠깐이라도 차에 두고 내리시면 안 됩니다.

Q 온열질환 해열제를 이미 먹었는데 어떡하죠?

한 번 복용한 정도로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다만 효과가 없으니 계속 복용하지 마시고, 그늘에서 쉬면서 수분을 보충하십시오. 증상이 나아지지 않거나 의식이 흐려지면 즉시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오늘 딱 세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더위로 오른 열에는 해열제가 듣지 않습니다. 그늘, 물, 휴식이 먼저입니다.
의식이 흐리고 땀이 나지 않는 고열 환자를 보면 즉시 119. 약을 먹이려 하지 마십시오.
어르신은 목이 마르지 않아도 규칙적으로 물을 드셔야 합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별 환자에 대한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지속되거나 악화되면 반드시 의료기관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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